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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사우스햄턴의 잃어버린 갈고리봉을 찾아서

지금 내가 있는 베트남 다낭 해변에는 가끔 푸른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유유히 떠다니는 하얀 요트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37년 전인 1989년, 영국의 을씨년스럽고 차가운 바다에서 겪었던 생애 첫 요트 항해의 기억이 소름 돋게 리마인드 되곤 합니다. 당시에는 주말을 통째로 날려버린 끔찍한 장면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이만한 인생의 찰진 양념이 또 없습니다.

1. 복스홀(Vauxhall)과 레코드 로얄의 기묘한 조우

1989년 당시 영국의 날씨는 정말 정이 안 갈 정도로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워낙 테니스를 좋아하는데 매일 비가 오고 흐리니 호텔 방에 갇혀 죽을 지경이었죠. 그러던 차에 영국의 유명 엔지니어링사인 리카르도(Ricardo)의 변속기 담당 부장이었던 트레드웰(Mr. Treadwell)이 사우스햄턴(Southampton)으로 요트를 타러 가자고 깜짝 초대를 해왔습니다. 예전에 그 친구가 한국 출장을 왔을 때 내가 공항 배웅도 해주고, 차 안에서 해군 출신에 바다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에 대한 고마움의 답례였던 것 같았습니다.

토요일 아침, 트레드웰이 나를 데리러 와서 주차장에 세운 차는 영국의 복스홀(Vauxhall)이었습니다. 그런데 차를 타려고 보니 외형이 한국 도로에서 매일 보던 대우자동차의 ‘레코드 로얄’과 소름 돋게 똑같이 생겼더군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글로벌 거인 GM이 같은 플랫폼의 자동차를 이 나라, 저 나라에서 껍데기와 이름만 싹 바꾸어 팔아먹는 배지 엔지니어링의 세계를 말입니다. 어쨌거나 그 복스홀을 타고 워딩(Worthing)에서 사우스햄턴까지 약 2시간을 달려 요트가 정박된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2. "멀리 봐, 김! 가까이 보지 말고!"

진짜 고생은 배에 타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무보트에 수동 펌프로 바람을 씩씩거리며 불어 넣고, 바다 한가운데 말뚝에 묶여 있는 그의 요트까지 도달하기 위해 팔이 얼얼해질 때까지 약 30분간 쉼 없이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겨우 요트에 올라타니 날씨가 또 말썽이었습니다. 조용하던 바다에 갑자기 높은 파도가 치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죠. 요트 기분 낼 분위기는커녕 캐빈(선실) 위에서 흔들리는 돛을 풀고 홋줄을 정리하느라 온몸을 이리저리 부딪치며 겨우 바다로 나갔습니다.

선실은 성인 네 명 누우면 꽉 차는 콤팩트한 크기였지만, 내부 시설은 놀라웠습니다. 네비게이션 시스템, 화장실, 부엌까지 그 좁은 공간을 요리조리 레이아웃 짜맞추어 아주 쓸모 있게 매립해 두었더군요.

한참을 가다가 트레드웰이 내게 조타 키(Helm)를 넘겨주었습니다. 신나서 잡았는데 배가 자꾸 갈지자로 흔들리니 옆에서 이 양반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What are you doing now, Mr. Kim? Keep your eyes on the far target, not just in front!" (지금 뭐 하는 거야, 김! 바로 앞만 보지 말고 저 멀리 있는 타겟을 보면서 키를 잡으라고!)

내 눈앞의 파도만 보고 조타를 하니 배가 요동을 쳤던 것입니다. 속으로  ‘어이, 친구. 나도 대한민국 해군을 나오긴 했지만 배 안 타는 육상 근무(Dry Navy)여서 이런 돛단배 조타는 안 해봤단 말이네’ 라고 버퍼링 섞인 항변을 하고 싶었으나, 멀리 보고 방향을 잡으라는 그의 조향 이론이 백번 맞는 말이어서 얌전하게 "I see!"를 외치며 먼바다로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영구 사우스햄턴의 바다를 그린 그림


3. 사라진 갈고리봉, 그리고 3시간의 영국식 냉기 전압

약 2시간 반 동안 영국의 거친 바다를 헤매다 마침내 정박용 말뚝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오늘의 최종 하이라이트, 사고가 났습니다.

트레드웰이 내게 배가 천천히 움직이는 와중에 갈고리봉(Boat Hook)을 이용해 바다에 떠 있는 정박용 홋줄을 건져 올려 말뚝에 배를 묶는 마스터 작업을 부탁한 것입니다. 수병 출신은 아니지만 그 정도 낚시질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신 있게 갈고리를 뻗었는데… 아차 하는 순간, 미끄러운 갈고리봉이 손에서 스르륵 빠지더니 그대로 영국 바닷속으로 수직 낙하해 버렸습니다.

밧줄을 건질 무기가 사라졌으니 서서히 말뚝으로 접근하기가 불가능해졌습니다. 난감해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옆을 지나가던 다른 배에게 "미안한데 우리 배 좀 말뚝까지 살짝만 끌어달라"고 다급하게 육성으로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도와주겠다고 나선 이 배의 엔지니어(?) 놈들이 가속을 너무 세게 해버렸습니다. 그 엄청난 관성때문에 트레드웰의 요트가 정박용 말뚝과 쿵! 하고 거칠게 충돌하고 만 것입니다. 그 충격으로 배 난간의 라이프라인을 지탱하던 쇠파이프(Stanchion)가 '툭' 하고 정박용 말뚝에 부딪히더니 꼴사납게 휘어버렸습니다.

그 순간, 트레드웰의 얼굴을 보니 아시아에서 온 소중한 고객(Customer)이고 뭐고 간에 이 양반의 눈빛에 영국의 칼바람을 능가하는 초고압의 냉기가 쌩~ 돌고 있었습니다. 그 휘어진 파이프를 바라보는 그의 망연자실한 표정이란…!

결국 요트를 대충 묶어두고 다시 복스홀을 타고 워딩의 호텔로 돌아오는 3시간 동안, 차 안에서는 라디오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지독하고 냉랭한 침묵의 기운만 가득했습니다. 트레드웰은 단 몇 마디만 겨우 뱉었고, 나는 조수석에서 죄인처럼 앞만 보며 주말을 완전히 버렸다는 나름의 손익계산서를 두드려야 했습니다. 이상 1989년 여름 어느 주말의 얘기였습니다. 

요트에서 바다로 떨어트린 갈고리를 찾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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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간 자동차 제어 시스템의 진화를 현장에서 지켜본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지금의 자동차 제어기술의 발전과 법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적어본 칼럼입니다. 1.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의 재현, SDV가 맞닥뜨린 진통 SDV(Software Defined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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