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어치 주유하면 얼마만큼 차를 움직일까? 엔진 열효율과 철(Fe)의 아이러니
우리가 주유한 연료의 40%만 건지는 이유
예를 들어 주유소에서 만 원어치의 연료를 채웠다고 가정해 봅시다. 과연 이 중에서 얼마만큼의 연료가 순수하게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쓰일까요? 애석하게도 그 대답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일반적인 내연기관 승용차의 경우, 대략 4,000원어치 정도의 연료만 우리가 목적한 바와 같이 원하는 곳으로 가거나 짐을 운반하는 등 자동차와 사람을 움직이는 운동에너지로 쓰입니다. 나머지 7,000원어치의 연료는 자동차를 굴리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허무하게 소모되고 맙니다. (사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만 원 중에서 약 7,000원은 유류세 등의 세금이 차지하므로, 실제 연료 값 기준으로 자동차를 움직이는 데 쓰이는 돈은 3000원의 40%인 1,2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셈입니다.)
결국 우리가 연료에 투자한 순수 에너지 돈 중에서 겨우 40% 정도만을 건지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나머지 사라져 버린 아까운 에너지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위의 에너지 흐름 도해를 보면 그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엔진 안에서 연소되는 연료가 발생시키는 총에너지 중 딱 40%만이 피스톤을 밀어내는 유효한 힘(운동에너지)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약 30%는 뜨거워진 엔진을 식히기 위한 '냉각수'를 통해 빠져나가며, 나머지 30% 또한 뜨거운 '배기가스' 등의 형태로 외부로 배출되며 소모되어 버립니다.
엔진을 열심히 태우고, 열심히 식히는 아이러니
여기서 총 연료 에너지의 무려 30%나 붙잡아 먹는 '냉각 손실'을 집중해 봅시다. 엔진이란 본래 연료를 폭발시켜 발생하는 높은 압력을 운동에너지로 바꾸어 사용하는 장치인데, 발생한 열의 30%를 그저 강제로 식혀서 버린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노릇입니다. 왜 이런 비효율적인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을까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엔진이 일하는 혹독한 내부 환경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가장 핵심적인 무대는 엔진의 연소실입니다. 연료와 공기의 혼합기가 시시각각으로 폭발하며 내뿜는 수천 도에 달하는 높은 온도를 견뎌야 한다는 것이 가장 가혹한 조건입니다. 동시에 엔진은 동력을 반영구적으로 전달하는 기계장치이므로, 이 엄청난 폭발력을 장기간 버텨내야 합니다.
이런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재료 중 어떤 것이 가장 적합할까요?
오직 '뜨거운 고열을 잘 견뎌야 한다'는 조건만 본다면, 수천 도의 가마 속에서도 끄떡없이 버티는 도자기(Ceramic) 같은 재질이 가장 훌륭한 엔진 재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도자기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충격에 버티는 '인성(질긴 성질)'이 없다는 점입니다. 엔진이 힘을 전달하려면 필연적으로 엄청난 속도로 밀고 당기는 기계적 충격이 가해지는데, 툭 치면 깨지는 도자기는 이 환경을 도저히 견디지 못합니다.
지구상의 가장 현실적인 타협점, 철(Fe)
결국 엔진의 특수한 작업 환경을 모두 고려할 때, 지구상에서 가장 적합한 대안은 철(Fe)을 주축으로 하는 금속 재질입니다. 금속은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부피가 약간 커지는 열팽창 현상이 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높은 온도까지 처음에 만들어진 모양을 단단하게 유지합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형태의 강한 힘과 충격을 전달하는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납니다. 게다가 지구상에 흔하게 분포되어 있어 값이 싸다는 강력한 경제적 장점도 있지요.
다만 금속을 엔진 재료로 쓸 때 발생하는 약점인 '열에 의한 치수 변화(열팽창)'를 극복하는 것이 엔지니어들의 숙제였습니다. 작동 중인 엔진 부품의 온도를 아주 정밀하게 통제하여, 엔진이 정상 가동 중일 때는 항상 일정한 크기와 간격(Clearance)을 유지하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 밀착되어 맹렬하게 움직이는 금속 부품들에게 강제적으로 냉각수를 흘려보내 연소열을 회수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만약 열을 식혀주지 않으면 열팽창에 의해 금속 부품들이 팅팅 부어올라 상호 간에 꽉 끼어 달라붙는 치명적인 소착(Seizure)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자동차 엔진은 한쪽에서는 열심히 불을 지피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불 때문에 발생한 열을 열심히 식혀야만 하는 아주 묘하고도 아이러니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세밀한 온도 제어 과정을 통해 부품의 온도를 적정선으로 제한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빠져나가는 열량이 전체 에너지의 30%에 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래의 엔진: 6,000원의 가치를 향하여
만약 수천 도의 고열에서도 변형이 전혀 없고 치수가 유지되면서, 동시에 금속처럼 가공이 편하고 충격에 잘 견디는 꿈의 신소재가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엔진을 굳이 무거운 금속으로 만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자동차 학계와 연구소에서는 이러한 금속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엔지니어링 세라믹이나 특수 공업용 플라스틱 등으로 엔진 부품을 대체해 나가는 연구를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만약 고열을 견디는 소재 대체가 완벽히 성공하여 부품의 온도를 일부러 깎아내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 쯤에는 주유소에서 만 원어치의 연료를 넣었을 때 온전히 6,000원, 7,000원어치의 힘을 순수하게 차를 움직이는 목적으로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버려지는 열 속에 숨겨진 단 1%의 효율을 더 건져 올리기 위한 엔지니어들의 보이지 않는 사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