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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생 할머니의 ‘쇳가루’ 조언, 그리고 세 번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

 

1. 유년의 기억과 거대한 변화의 전조

나의 할머니는 1905년에 태어나셨습니다. 세상을 떠나신 지는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제 머릿속에 이토록 선명하게 남아있지요. 청소년기 나의 성장에 정신적으로 가장 거대하고 깊은 영향을 끼치신 분이 바로 할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중·고등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직업 특성상 이 도시 저 도시로 메뚜기처럼 잦은 전근을 다니셔야 했지요. 오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그 거친 이사 길에 전부 데리고 다니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결국 아버지는 누나와 형, 그리고 저를 고향의 할머니에게 맡기셨고, 제 밑으로 동생 둘만을 챙겨 발령지로 떠나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깡촌 고향 집에서 할머니의 품에 안겨 따스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당시 제가 살던 시골 마을에서는 나라 전체를 들썩이게 하던 거대한 소문 하나가 매일같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영일만 바닷가에 '포항제철'을 짓는다는 이야기였지요. 동네 아저씨들이 제철소 공사장에 막노동을 하러 가도 기차표 몇 장과는 비교도 안 될 큰돈을 벌어온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논과 밭을 미련 없이 팔아치우고, 아예 포항으로 야반도주하듯 이사를 가는 이웃들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포항제철 기공식

2. 농업 체계에서 산업 사회로의 망명 지침

지금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냉정히 되돌아보면, 그때가 바로 제가 살던 동네의 생산 방식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아날로그 농업'에서 거대한 '근대 산업'으로 대전환을 시작하던 역사적인 분기점이었습니다.

어린 저를 무릎에 앉혀두고 밤마다 머리를 쓰다듬으시던 할머니는, 항상 똑같은 톤으로 제 귓가에 대고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야 야, 너는 커서 무조건 기술을 배워라. 그래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누가 그러는데, 포항제철에 들어온 일본 기술자는 아무도 모르게 지 혼자 으슥한 골방에 콕 박혀서 쇳가루를 만들어 나오는 게 일인데, 그 사람이 돈을 그렇게나 많이 번단다. 그러니까 너도 기술자가 돼야 해…"

일 년 내내 허리가 부러져라 모내기를 하고, 논에 물을 대고, 피땀 흘려 추수하고, 겨울에는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아 가마니를 짜도 늘 손에 쥐는 것은 입에 풀칠하기 빠듯했던 농민의 삶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의 눈에, 시원한 골방에 앉아 꼼지락거리며 한 달 만에 농부의 일 년 수입을 통째로 벌어간다는 그 미지의 '고급 기술자'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삶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압도적인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시 그 일본 기술자는 아마도 고로(용광로)에 주입하는 재료를 정밀하게 혼합하는 배합 기술자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할머니의 그 투박한 말씀은, 거시적인 역사학적 관점에서 보면 아주 위대한 지침이었습니다. "너는 지금 우리가 갇혀 있는 이 지독한 농업 체계에서 살지 말고, '산업'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와 '고급 기술자'라는 위대한 직업이 지배하는 새로운 산업사회로 망설임 없이 망명해라."라는 뜻이었으니까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노인의 지혜로 변화의 바람을 정확히 읽어내고, 사랑하는 손자에게 인생의 완벽한 주행 경로(Trajectory)를 설정해 주신 위대한 가이드라인이었던 셈입니다.

3. 깡시골에서 독일 보쉬까지, 온몸으로 받아낸 압축 성장

가만히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모든 발전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압축'하여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가혹할 정도로 역동적이었던 패러다임의 변화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며 살아온 세대의 한 사람입니다.

전기조차 귀하던 영남의 어느 이름 모를 깡시골 소년이, 할머니의 말씀대로 기술 하나를 손에 쥐고 자라나 세계 자동차 공학의 본고장이자 심장부인 독일 보쉬(Bosch)로 건너가 25년간 글로벌 기술 프로젝트의 선두에 서게 될 줄을 그 시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수백 년간 변하지 않던 정적인 농경사회의 풍경에서 시작해, 기계화의 시대를 거쳐, 지구상에서 가장 첨단화된 자동차 전자제어 연구소의 한복판에 서기까지... 남들은 수세기에 걸쳐 완만하게 겪었을 거대한 문명사적 도약들을 단 한 번의 일생(One-generation) 동안 쉼 없이 기어를 바꾸어가며 돌파해 온 셈입니다. 제 삶의 궤적 자체가 대한민국 압축 성장의 축소판이라는 소회가 가슴을 스칩니다.

4.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 바라본 또 다른 대전환기

이제 제가 그때 저를 가르치시던 할머니의 나이가 되어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세상은 그 뒤로 또다시 거대한 엔진을 바꾸며 변혁해 버렸습니다. 기계와 전기가 인간의 '육체적 노동력'을 대신해 주던 산업사회의 수준을 까마득히 넘어, 이제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사고력과 인지 능력'마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가 통째로 대체해 버리는 미지의 디지털 자본주의 길로 진입한 것이지요.

이 변화의 끝이 인류에게 어떤 계산서를 보여줄지는 먼 미래의 후손들이 판단해 줄 일입니다.

다만, 이 거대하고 약간은 기괴한 패러다임의 변화 한복판에서 "이제 내가 내 자손들에게는 과연 어떤 이정표를  제시해 주어야할까?"라는 조금은 무거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1905년의 할머니가 제게 주셨던 그 명쾌하고 확실한 '쇳가루의 이정표'처럼, 지금 내 아이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던질 수 있는 선명한 미래가 제게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판단과 선택은 어렵지만 변화를 외면하지 않고 그 속성을 묵묵히 관찰하며 기록하는 것. 그것이 다음 세대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임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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