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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RAN 원고지에서 디지털 트윈까지: 자동차 소프트웨어 진화사


바야흐로 온 세상이 디지털화되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제로백이 몇 초인가', '외관이 얼마나 매끈한가', 혹은 삼각별(Benz)이나 바람개비(BMW) 같은 브랜드 로고만으로 자동차를 선택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차가 나를 얼마나 더 편하고 즐겁게 만드는가?", "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주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죠.

아날로그 감성을 넘어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자동차 역시 소프트웨어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완전히 들어왔습니다.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 아닌 "바퀴 위의 생활공간"

흔히 미래 자동차를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저또한 얼마전에 게시한 이 블로그의 글에서 그런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38년간 자동차를 개발해온 엔지니어의 시각에서 이 표현은 자동차라는 공간의 가치를 조금 낮추어 보는 느낌이 듭니다.

스마트폰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작은 화면으로 시청각적 경험만 전달하지만, 자동차는 사람의 몸이 직접 들어가 속도, 진동, 공간 이동, 온도와 소리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피지컬(Physical)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동차 제어 시스템은 승객의 생명과 직결되기에 기능 안전 규격인 ISO 26262와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 표준인 ASPICE라는 엄격한 규제를 완벽히 충족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이라는 말 대신, '바퀴 위의 생활공간'이라는 표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옛날 전산실 키펀치의 정경


키펀치 카드 시절부터 시작된 엔지니어의 여정

제가 처음 공학용 소프트웨어를 접한 것은 대학 시절 FORTRAN77 수업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코딩 용지가 원고지처럼 생겨서 규칙이 무척 복잡했습니다. 간단한 계산은 손으로 하는 게 빠르다 싶을 만큼 전산 처리 과정이 까다로웠죠. 코딩 후 전산실로 찾아가 키펀치 작업을 하고, 그 카드를 들고 카드리더실로 가 입력한 뒤, 며칠을 기다려 출력실에서 결과를 찾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학교에서 가장 깨끗하고 신식이었던 전산실 건물의 풍경이 약간은 까다로웠던 조교님의 모습과 함께 아직도 아련합니다.

해군 장교 복무를 마치고 기아자동차에 입사하니 세상은 또 달라져 있었습니다. 책상마다 조그만 PC가 한 대씩 놓여 있었죠. MS-DOS 환경에서 BASIC 언어로 기어 설계를 하던 신참 엔지니어 시절을 지나, C언어와 C++가 주류가 되면서 소프트웨어는 이제 혼자서는 다 다룰 수 없을 만큼 방대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하는 반복 계산을 '빠르게' 도와주는 도구에 불과했고, 최종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가상의 차를 만드는 '모델 기반 제어(Model-Based Control)'의 등장

이후 엔진 제어 시스템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물리적인 기계를 '가상 모델'로 만들고, 그 모델 안에서 모든 물리량을 계산·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엔진을 예로 들어볼까요?

  • 엔진으로 들어가는 공기량, 연료량, 냉각수 온도, 엔진 회전수(RPM) 등의 센서 신호를 입력받으면,

  • 소프트웨어 내부의 '엔진 모델'이 현재 엔진이 만들어내고 있는 토크(Torque)를 정확히 계산해냅니다.

  • 이 토크 값은 CAN 통신을 통해 차량 모델로 전달되고, 파워트레인과 타이어 마찰력을 거쳐 차를 밀어내는 최종 구동력으로 계산됩니다.

이러한 모델링은 진단(OBD)과 수명 예측에도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배가가스 촉매장치의 열화 정도를 가상 모델을 통해 실시간으로 판단하는 것은 물론, 항공기나 대형 건설 중장비 분야처럼 "컴프레서 블레이드에 피로 응력이 과하게 발생하고 있으니 정비가 필요합니다"라고 시스템이 스스로 고장을 예측하고 알려주는 단계까지 발전했습니다.

엔진, 변속기, 브레이크, 타이어 등 각 부품의 모델들이 만들어내는 신호가 하나로 연결되면 가상공간에 하나의 완벽한 차가 탄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동차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자, 미래 SDV 시대를 받치는 든든한 기술적 기초입니다.

SDV가 바꿀 미래: 획일적인 박스를 넘어 개인화된 이동 공간으로

이전 글에서 다룬 것처럼 자동차를 하나의 시스템 모델로 완성하여 가상공간(디지털 트윈)에 구축해 두면, 비로소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처럼 자동차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중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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