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보쉬(Bosch) 골프 대회를 제패한 올드 엔지니어의 고백
귀국길, 눈물로 버리고 온 두 개의 트로피
오랜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이삿짐을 싸던 날, 유독 제 손길을 붙잡고 놔주지 않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독일 현지 사내 골프대회에서 피와 땀으로 거머쥐었던 두 개의 묵직한 챔피언 트로피였습니다.
대리석 받침에 금빛, 은빛으로 빛나는 이 녀석들은 안타깝게도 무지막지한 무게와 부피 때문에 결국 이삿짐 컨테이너에 타지 못하고 독일 땅에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아, 이걸 버리고 가야 하다니…' 밀려오는 아쉬움에 쓰레기통으로 향하기 전, 거실 탁자 위에 나란히 올려두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 |
| 사내 골프대회 우승 트로피 |
지금도 제 컴퓨터 사진첩 한구석을 빛내고 있는 이 사진이 바로 그날의 증거물입니다. 트로피 하단 명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Golf Bosch-Masters / Bruttosieger Herren]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습니다. 핸디캡을 적용해 운 좋게 먹는 등수가 아니라, 오직 타수 그대로만 계산해 가장 적은 타수를 친 단 한 명의 최고 강자, 즉 '메달리스트(챔피언)'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의 증서입니다. 이 무뚝뚝한 독일 보쉬 본사 대회에서 각각 2004년과 2008년, 두 번이나 정상에 올라 챔피언을 먹었으니 엔지니어 인생 중 꽤나 폼 나던 순간이었습니다.
테니스 라켓을 던지고 골프채를 잡다
사실 제가 처음부터 골프 천재였던 것은 아닙니다. 제 골프 성장의 일등 공신은 뜻밖에도 대학 시절 젊음을 불태우며 치열하게 쳤던 '테니스'에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테니스는 날아오는 공을 라켓의 스위트 스폿(Sweet Spot)에 정확히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스텝을 밟고, 엉덩이와 코어의 회전력을 이용해 공을 강하게 밀어내는 맹렬한 아날로그 스포츠입니다. 대학 시절 이 테니스를 하도 열심히 쳐놓은 덕분에, 뼈대와 근육에는 이미 '구질을 컨트롤하는 회전 감각'과 '임팩트 순간의 손목 힘'이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처음 골프채를 잡았을 때, 많은 초보자가 겪는 공 맞히기의 공포가 제게는 그리 어렵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정지해 있는 하얀 공을 클럽 페이스 중심에 툭툭 맞추는 메커니즘이 테니스의 임팩트와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며,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스코어를 줄여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엔지니어들을 침묵하게 만든 아시안 드라이버
보쉬의 독일 토박이 엔지니어들은 기계 공학의 강국 출신답게 골프를 칠 때도 아주 정밀하고 정석적으로 플레이합니다. 그런 그들이 모인 'Bosch-Masters' 대회 날, 조수석에 실례할 뻔하게 만들었던 동료 볼프강을 비롯한 쟁쟁한 독일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아시안 엔지니어의 매운맛을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드라이버를 시원하게 날려 그린 주변에 공을 척척 붙일 때마다, 콧대 높던 독일 동료들이 턱을 벌리며 엄지를 치켜세우던 그 짜릿한 표정들은 평생 잊지 못할 훈장입니다. 2004년에 첫 우승 컵을 들어 올리고, 4년 뒤인 2008년에 다시 한번 챔피언 자리를 탈환하며 그들에게 "한국 엔지니어들은 기술만 좋은 게 아니라 골프도 무섭다"는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지요. (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만)
비록 영광의 금빛 트로피 실물은 슈투트가르트의 추억 속에 묻어두고 왔지만, 한 번 몸에 새겨진 정밀한 스윙 메커니즘과 승리의 리듬은 나이가 든 지금도 제 삶의 든든한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뼛속까지 차가운 데이터만 다루던 엔지니어가 푸른 잔디 위에서 하얀 공 하나로 글로벌 동료들과 교감을 나누던 그 찬란했던 주말들. 여러분도 인생의 정체기가 올 때, 젊은 날 치열하게 몸으로 익혔던 또 다른 스포츠의 기억을 깨워 채를 잡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