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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cle에서 AI BI까지: 보쉬에서 겪은 ERP 진화사와 중간관리자의 종말

 엔지니어 시절에는 ECU를 비롯한 각종 제어기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버전업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밤낮으로 경을 쳤다면, 메니저가 되고 나서는 엉뚱하게도 회사의 뼈대를 이루는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따라가기 위해 또 다른 경을 치곤 했다.

내가 처음 독일 보쉬(BOSCH) 본사로 갔을 때는 오라클(Oracle) 베이스의 ERP를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는 각 디비전(Division)이 완전히 독립된 전산 시스템을 운용하던 시절이었다. 가솔린 시스템 사업부는 GSIS(Gasoline System Information System), 샤시 시스템 사업부는 CSIS(Chassis System Information System), 디젤 사업부는 또 그들만의 독자적인 시스템을 쓰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디비전끼리 융합 사업을 하려고 하면 ERP 전산망이 서로 연동되지 않아, 명색이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이면서도 사업부 간 정산은 엔지니어와 매니저들이 손으로 직접 계산기를 두들겨 가며 숫자를 맞추는 마찰이 발생하곤 했다.

ERP가 너무 다양해서 헷갈려하는 직원의 모습


💻 SAP의 등장과 3대 시스템의 요상한 공존

이후 전사적으로 SAP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전산망은 일대 혁신을 맞이했다. 오라클 기반 시절보다 화면은 눈에 띄게 깔끔해졌고, 거의 모든 입력 화면에는 마우스 원클릭으로 선택할 수 있는 드롭다운 메뉴가 장착되었다. 회사의 모든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완전히 ERP 프로그램 내부에 순정 섀시처럼 녹아들었고, 무엇보다 마침내 디비전 간의 전산 대화가 완벽하게 소통되기 시작하면서 아주 만족스럽게 시스템을 운용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현장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새 시스템인 SAP가 들어왔다고 해서 기존의 오라클 전산망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 거대 전산망이 한동안 병존하면서, 매니저들은 양쪽 시스템에 데이터를 중복 입력하는 등 일이 오히려 두 배로 커져 버리는 병목 현상을 겪어야 했다.

그렇게 전산과의 전쟁을 치르며 은퇴하기 얼마 전인 2023년 무렵,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또 다른 거인인 세일즈포스(Salesforce)가 무서운 속도로 치고 들어와 SAP의 영역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완벽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기존의 Oracle, SAP, 그리고 Salesforce라는 세 가지 초대형 시스템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하는 요상하고도 복잡한 세상이 열린 것이다.

📊 MS BI의 진화와 '중간관리자'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

여기에 더해 기존에 사용하던 MS 오피스 계열의 BI(Business Intelligence) 리포팅 기능은 날이 갈수록 무섭도록 막강해졌다. 대용량 숫자를 다루는 연산 속도, 화려한 그래픽 첨가 기능, 그리고 무엇보다 실전 대시보드 형태의 '실시간 리포팅 기능'이 워낙 탁월하다 보니, 굳이 무거운 ERP 본체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회사 내 일반 보고서는 거의 다 BI 프로그램으로 구워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거대 기업 내부는 3가지 서로 다른 ERP 툴과 초고도화된 MS BI가 얽히고설켜 돌아가는 복잡한 서킷이 되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롭고도 냉정한 경영학적 특징 하나가 포착된다. 시스템 툴이 이토록 좋아지고, 그 툴 안에 인공지능(AI) 제어 기능까지 탑재되기 시작하면서 회사 내 '중간관리자'들의 위치가 대단히 애매해졌다는 점이다.

과거의 중간관리자들은 상부의 명령을 하부에 전달하고, 하부의 데이터를 취합해 위로 보고하는 '인간 연결망'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완벽하고 정확한 데이터셋과 AI 기반의 툴이 실시간으로 관제탑 역할을 해주는 지금, 화이트칼라 계층에 그렇게 많은 관료식 조직은 사실상 필요가 없다. 냉정하게 정비창을 뜯어보면, 맨 꼭대기의 결정권자 사장 한 사람과 전산 툴을 다루는 수많은 평사원 직결 구조만 있어도 회사는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판단이다.

⚖️ 역설의 경영학: 인간이냐, 숫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거대 기업들이 당장 이런 슬림한 구조로 대전환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시스템의 부재가 아니라 '인간 중심의 전통' 때문이다.

복지를 최우선 가치로 앞세우며 노동조합을 경영의 핵심 파트너로 참여시키고, 인권을 중히 여기는 유럽 고유의 문화적 브레이크가 전산망이 이끄는 극단적인 조직 해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오직 숫자로만 승부하는 글로벌 무한 경쟁 시장에서 이러한 인간 중심적 타협은 회사의 순수한 '숫자적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 마스터의 인문·경영학적 소회 오늘날 회사 안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시스템과 AI 덕분에 물밑에서 아주 치열하고 조용하게 요동치고 있다. 과연 관료 조직을 해체하고 숫자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인간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옳은가?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결국 우리가 '인간'을 중요시하는가, 혹은 '숫자'를 중요시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인공지능 시대가 우리에게 던진 가장 묵직한 질문이다.

[칼럼] DCAS의 출현으로 본 자동차 잔혹사와 기술 통합의 방향: SDV 시대,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이 던지는 메시지

38년간 자동차 제어 시스템의 진화를 현장에서 지켜본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지금의 자동차 제어기술의 발전과 법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적어본 칼럼입니다. 1.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의 재현, SDV가 맞닥뜨린 진통 SDV(Software Defined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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