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원의 낭만과 현실: ‘Nur zum gucken’에서 민들레와의 사투까지
독일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고층 아파트가 별로 없고, 주거 형태의 대부분이 단독주택(Einfamilienhaus)이거나 연립주택이다. 독일에서 오랜 세월 살아가며 대학교나 회사와의 거리 문제로 세 번 정도 이사를 다녔는데, 그 과정에서 한동안 아주 멋진 정원이 딸린 집에서 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 아름다운 정원은 그저 "보기만 하는 정원(Nur zum gucken)"이었다. 잔디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 등으로 정원 안에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눈방용 박제에 가까웠다.
그러다 마침내 마지막으로 정착했던 집에서 나는 드디어 온전히 소유하고 밟을 수 있는 '나만의 진짜 정원'을 가지게 되었다.
🚜 낭만의 유통기한, 그리고 4시간의 서킷 주행
내 정원을 가졌다는 기쁨도 잠시, 봄이 찾아오고 여름과 가을을 지나는 동안 정원은 매끄러운 휴식처가 아니라 치열한 관리 구역으로 변모했다. 최소 2주일에 한 번씩은 무조건 잔디를 깎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생각보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기계를 끌고 나와 정원 구석구석 잔디를 깎아내야 하고,
잘려 나간 잔디들을 커다란 자루에 꾹꾹 담아내야 하며,
그 무거운 자루들을 차에 싣고 약 4km쯤 떨어진 지정 폐기장까지 운전해 가서 버려야 했다.
그러고 돌아와 정원 주변을 싹 쓸고 정원에 나란한 창이나 벽에 붙어있는 잔디조각을 싹 털고 씻어내면, 족히 4시간짜리 중노동 공정이 마무리되곤 했다.
🌼 복병: 비염 알레르기와 민들레 박멸 작전
정원 생활이 내게 남긴 또 하나의 잊지 못할 흔적은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없었던 '비염성 꽃가루 알레르기(Heuschnupfen)'가 생긴 것이었다. 잔혹하게도 잔인한 4월부터 5월 초순만 되면 어김없이 콧물이 쏟아지고 재채기가 멈추지 않았다.
우리 집 정원에서 그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주범은 다름 아닌 노란 민들레였다. 바람을 타고 날아와 잔디밭 사이에 끈질기게 뿌리를 내리는 녀석들을 보며, 나는 봄마다 정원에 핀 민들레를 샅샅이 찾아내 뿌리째 뽑아 버리는 '박멸 작전'을 수행해야만 했다. 뽑아내도 다음 해면 어김없이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를 보며 아날로그 진실의 강인함을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 인간과 정원의 밸런스
"정원이 있는 삶"이란 멀리서 보면 한없이 평화롭고 좋아 보이지만, 막상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엄청난 리소스와 체력을 지불해야 하는 법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정원 노동을 대하는 독일 친구들의 반응도 아주 칼로 두부 자르듯 두 패로 싹 갈라진다는 사실이다.
한쪽은 주말마다 흙을 만지고 정원을 가꾸는 행위 자체에서 영혼의 치유를 얻는 '정원 노동 예찬파(Gartenarbeit 고수들)'이고,
다른 한쪽은 나처럼 정원이 주는 평화는 좋으나 그 뒤에 따르는 무한 반복의 노동이 지긋지긋해서 손사래를 치는 '정원 노동 혐오파'들이다.
멀리서 보면 한없이 아름다운 독일의 정원 풍경 뒤에는, 주말마다 허리를 숙이고 땀을 흘리거나 혹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잔디 기계를 미는 인간들의 치열한 아날로그적 진실이 숨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