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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스캔들의 핵심, '디피트 디바이스(Defeat Device)'의 공학적 본질

 

언론 속 '속임수 장치'의 진짜 법적 이름

자동차 산업 역사상 가장 거대한 스캔들이자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폭스바겐(VW)의 디젤 배기가스 조작 사건을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폭스바겐이 '속임수 소프트웨어'를 장착했다며 이를 위트 있게 '디시트 디바이스(Deceit Device·속임수 장치)'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태의 본질을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장치의 진짜 명칭은 '디피트 디바이스(Defeat Device)'입니다. 이는 언론이 만들어 낸 일반 명사가 아니라, 미국의 환경보호청(EPA)이나 캘리포니아 대기보존협회(CARB)에서 제정한 법조문에 명시되어 있는 엄연한 공식 법률·기술 용어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는 단어이지요.

아래의 사진은 당시 CARB가 폭스바겐 본사 및 미국 법인에 보낸 공식 통지서의 표지 페이지입니다. 제목(Re:)을 보시면 "Admission of Defeat Device..." 즉, 디피트 디바이스의 사용을 인정하라는 내용이 핵심 주체로 명시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VW이 미국 CARB로 부터 받은 배기가스 인증관련 문서


'Defeat Device', 도대체 무엇을 이긴다는 뜻인가?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Defeat는 '상대방을 이기다, 패배시키다'라는 뜻이고, Device는 '장치나 도구'를 의미합니다. 직역하면 '상대방을 이겨 먹는 도구' 정도가 되겠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이겨야 할 '상대방'은 누구일까요? 단속을 나오는 CARB나 EPA 같은 정부 기관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엔지니어링 적으로 해석하는 진짜 상대방은 '배기가스 시험 모드(Test Mode)' 혹은 '규제 시험 방법' 그 자체입니다. 즉, 디피트 디바이스의 본질적인 의미를 쉽게 풀어내자면 "자동차의 배기가스 인증 시험을 무력화하여 통과하기 위해, 시스템이 인위적이고 추가적으로 작동시키는 모든 종류의 편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에도 있었던 엔진 후드의 비밀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쉬운 기술적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정부 기관에서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시험할 때는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실내 연구소의 '섀시 다이나모미터(Chassis Dynamometer)'라는 거대한 롤러 위에 차량을 올립니다. 차체는 쇠사슬로 단단히 고정해 둔 채 바퀴만 굴리는 것이죠.

이때 실제 주행 환경과 비슷하게 공기 흐름을 맞춰주거나 엔진룸 안의 계측 장비를 만지기 위해, 시험관들은 자동차의 본네트(엔진 후드)를 열어둔 채 시험을 진행하곤 합니다. 실제 도로 위를 달릴 때는 엔진 후드를 열고 주행할 일이 절대 없는데 말입니다.

차가운 로직으로 움직이는 ECU(Engine Control Unit)의 시선에서 보면, '차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데 바퀴는 구르고 있고, 심지어 엔진 후드까지 열려 있는 상태에서 일정한 주행 패턴이 반복된다'는 조건을 감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만약 여기에 나쁜 마음을 먹고 소프트웨어를 짜 넣으면 이런 속임수가 가능해집니다. "지금 엔진 후드가 열린 채 롤러 위를 달리는 걸 보니 배기가스 시험 중이구나. 당장 연료 분사량과 압력을 제어하고 제어 로직을 바꾸어서 배출가스를 극도로 줄이는 모드로 엔진을 돌려라!"

인증 시험이 끝나고 도로로 나가면 다시 원래의 펑펑 뿜어내는 모드로 돌아가는 것이죠. 놀랍게도 이 예시는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1990년대에 실제로 발생했던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당시 이 영악한 방식을 실행했다가 적발되었던 메이커 역시 기술력을 자랑하던 어느 독일 자동차 회사였습니다. 이처럼 규제의 눈을 속이기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 전반을 통틀어 '디피트 디바이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엔지니어의 양심이 지켜야 할 선

하드웨어의 한계를 소프트웨어 로직으로 극복하는 것은 엔지니어의 훌륭한 자질이지만, 그것이 규제 당국과 소비자를 속이는 방패로 쓰이는 순간 기술은 독이 됩니다.

"실행하다 걸리면 정말 큰일 난다.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자동차 학계의 금기가 깨졌을 때 패러다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우리는 디절게이트를 통해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화려한 제어 기술의 이면에는 언제나 엔지니어의 묵직한 '기술적 양심'과 '도덕성'이 베이스 아키텍처로 깔려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올드 엔지니어로서 다시 한번 가슴 깊이 되새기게 됩니다.

[칼럼] DCAS의 출현으로 본 자동차 잔혹사와 기술 통합의 방향: SDV 시대,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이 던지는 메시지

38년간 자동차 제어 시스템의 진화를 현장에서 지켜본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지금의 자동차 제어기술의 발전과 법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적어본 칼럼입니다. 1.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의 재현, SDV가 맞닥뜨린 진통 SDV(Software Defined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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