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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의 미국을 넘어 곡선의 유럽으로: 네 식구의 2,100km 무정차 스페인 대장정

 

효율성의 미국 도로, 자연을 닮은 유럽의 도로

자동차 현지 시험(Test)을 위해 미국 땅을 밟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직선으로 뻗은 길이 하염없이 펼쳐진 풍경이 먼저 생각납니다. 길가에는 황토색 흙과 간간이 선인장처럼 생긴 키 작은 관목들만 보일 뿐, 지평선 끝까지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포장도로는 그야말로 '효율성의 극치'였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운치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요.

그러나 유럽의 도로는 결이 다릅니다. 비교적 지형이 평평하여 충분히 직선으로 내지를 수 있었음직한 지역임에도, 도로를 굽이굽이 꺾어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운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인공물조차 자연의 일부로 동화시키고자 하는 이곳 사람들의 철학과 오랜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프라하의 차량 도난부터 북유럽의 페리 단속까지

그렇다고 유럽 여행에 낭만과 좋은 점만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유럽으로 금방 이사 온 주재원이나 엔지니어 가정들은 초반에 참 부지런히도 여행을 다닙니다. 저 역시 그랬고, 보통 초기 3년 동안은 매 주말이 멀다 하고 뻔질나게 유럽 전역을 쏘다니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건너 건너 들려오는 한국인들의 눈물겨운 무용담과 사건 사고도 참 다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만 몇 개 꼽아본다면 이런 식입니다.

  • 체코 공화국의 수도 프라하에서 낭만적인 밤을 보내고 아침에 나오니 차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

  • 이태리 베네치아 주차장에 가면 하도 도둑이 많아 차의 타이어들을 두리두리묶어둘 수 있는 거대한 쇠사슬을 유료로 빌려주더라는 이야기

  • 북유럽을 돌 때 페리(Ferry)를 타고 밤새도록 선상 바에서 술을 마신 뒤 아침에  차를 몰고 내리는데, 배에서 내리는 문 바로 앞에서 경찰들이 음주운전 검사기를 들이대고 기다리고 있더라는 이야기 등등...

당사자에게는 식은땀 흐르는 순간이었겠지만, 돌이켜보면 참 유쾌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참 많았습니다.

유럽은 냉전 시대가 끝나고 공산 체제가 붕괴되면서 구소련 연방에 묶여있던 나라들이 대거 독립하였고, 유럽연합(EU)의 출범까지 더해지며 문화적·경제적 다양성이 이전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풍성해졌습니다. 국경을 건널 때마다 확연히 달라지는 경제적 부침을 피부로 경험하는 것도 묘미였지요.

남부 유럽의 다소 낙천적이고 삶을 즐기는 생활 방식과, 북부 유럽의 부지런하고 철저하게 움직이는 전혀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 그리고 몇 시간 운전하지 않아도 색다른 언어가 귓가를 스치는 경험이야말로 유럽 자동차 여행이 주는 최고의 특권이 아닐까 싶습니다.

2003년, 유로화 초기 네 식구의 스페인 자동차 여행

2003년, 그러니까 유로(Euro)화가 통용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가족 네 식구는 제 운전대 하나에 의지한 채 스페인행 자동차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지금 돌아봐도 참 아름답고 좋았던 기억뿐입니다.

프랑스 남부 해안에 정박해 있던 예쁜 요트들의 풍경, 그리고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마저 마치 10대 아가씨들처럼 화사하고 컬러풀하게 옷을 차려입은 멋쟁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주한 거장 가우디의 걸작, 백 년이 넘도록 아직도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의 웅장함도 압도적이었지요.

우리가 베이스캠프를 쳤던 하비아(Javea)의 아늑한 모래사장, 그리고 아이들이 숨도 쉬지 않고 몰입했던 마드리드의 플라멩코 공연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무희들과 불과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댄서들의 거친 숨소리와 열정적인 발구름을 직관하니 온몸에 전율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그라나다에서 슈투트가르트까지, 2,100km의 무모한 '한방 쏘기'

진짜 드라마는 여행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오는 길에 펼쳐졌습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등을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하비아의 베이스캠프로 복귀한 날이었습니다. 일주일간 빌렸던 별장을 뒤로하고 다시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서 차에 올랐을 때, 시간은 이미 오후 3~4시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달려 한 800km 정도를 운전하니 프랑스 남부 지역을 통과하고 있더군요. 조수석과 뒷좌석을 돌아보니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깊고 고단한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쉼표를 찍고 숙소를 잡자니, 피로가 몰려와 다음 날 낮까지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엔지니어 특유의 '흐름을 끊기 싫은 로직'이 발동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집까지 한방에 쏘자!"

결과적으로 저는 그날 밤, 그라나다를 출발해 프랑스 대륙을 종단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우리 집 주차장에 차를 댈 때까지, 무려 2,100km의 거리를 교대 운전자도 없이 단 한 번의 숙박도 하지 않고 꼬박 하루를 밤새워 '한방에' 달렸습니다.

지금 아래의 지도를 다시 쳐다봐도 꼬박 20시간이 넘는 대장정인데, 그때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참 체력도 좋았고 한편으로는 가장으로서 참 무모했다 싶기도 합니다. 이제는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체력이 따르지 않아 절대 하지 못할, 오직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훈장 같은 추억입니다.

유럽여행의 경로을 나타낸 그림


차가운 기계의 한계를 시험하던 엔지니어의 열정이, 그날 밤만큼은 우리 가족의 소중한 기억을 싣고 달리는 지치지 않는 엔진이 되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슈투트가르트 우리 집에 차가 멈춰 선 순간 마주한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23년이 지난 지금도 제 기억 속 가장 뜨거운 한 페이지로 남아있습니다.

[칼럼] DCAS의 출현으로 본 자동차 잔혹사와 기술 통합의 방향: SDV 시대,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이 던지는 메시지

38년간 자동차 제어 시스템의 진화를 현장에서 지켜본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지금의 자동차 제어기술의 발전과 법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적어본 칼럼입니다. 1.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의 재현, SDV가 맞닥뜨린 진통 SDV(Software Defined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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