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늘이 열려도 인간은 땅을 딛고 산다: 자율주행 시대, 물리 제어의 역설
인간은 본래 걸어서 이동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사냥할 때도 두 발로 숨죽여 걷거나 먹잇감을 쫓아 온 힘으로 달렸다. 그러다 말을 가축으로 길들여 타기 시작했다. 동물의 힘을 빌려 이동한 것은 인류 역사상 첫 번째 모빌리티 혁명이었다.
마침내 1886년 독일에서 칼 벤츠가 만든 첫 가솔린 자동차가 등장했다. 동물의 근력에서 인간이 만든 기계의 동력으로 전환된 순간이었다.
그 후 약 100년 동안 이 기계는 오롯이 탑승자의 손아귀 안에서 통제되었다. 기화기(Carburetor)의 밸브를 열고 닫는 것은 액셀 페달과 연결된 철사 줄이었고, 바퀴를 붙들어 세우는 제동 역시 운전자의 발바닥에서 브레이크 패드로 이어지는 기계식 와이어나 유압 라인의 몫이었다. 진행 방향을 바꾸는 조향 장치 역시 운전대의 물리적 회전력에 온전히 의존했다.
트랜지스터가 발명되고 전자 연산 도구가 발전하면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사람의 거친 감각에 의존하기보다 센서와 액추에이터를 달아 신호를 종합·판단하고 엔진을 정밀 제어하는 것이 연료를 절감하고, 배기가스를 줄이며, 고장률을 낮추는 지름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인간이 하던 일은 '전자제어장치(ECU)'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는 가고자 하는 방향과 속도라는 의도(Intent)만 결정하고, 지령을 구체적인 동작으로 옮기는 것은 전자장치가 맡게 된 것이다. 비로소 '두뇌(의도)'와 '물리적 동작(실행)'의 첫 번째 분리가 일어났다.
1970년대 보쉬의 기계·전자식 연료분사 장치(K-Jetronic, L-Jetronic)가 메르세데스-벤츠 등에 탑재되어 선풍적인 성공을 거둔 이래, 물리적 동작을 제어장치로 넘기는 흐름은 제동(ABS/ESP), 조향(EPS), 전자제어 서스펜션으로 확장되었다. 운전자는 가속과 감속, 회전을 '요구'할 뿐, 실제 집행은 정밀 제어기와 액추에이터가 수행하는 구조가 안착했다. 이를 완성해 온 주역이 바로 보쉬, 콘티넨탈 같은 글로벌 Tier 1 부품사들이었다.
얼마 전부터 자율주행과 AI가 화두로 떠오르며, 마지막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두뇌'마저 기계로 대체되는 시대가 열렸다. 카메라, 레이더, 라이다 등 복합 센서와 고성능 컴퓨터가 결합되었고, 현재로서는 순수 카메라 비전과 신경망 연산에 집중한 테슬라가 가장 빠른 속도로 자율주행을 현실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테슬라는 주위를 살피는 인지 두뇌, 두뇌를 학습시키는 데이터 플랫폼, 차를 움직이는 물리 제어까지 모두 인하우스(In-house)에서 해결하는 완벽한 수직계열화 전략을 취했다. 빠른 개발 속도와 소통의 효율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테슬라의 독자 질주가 100년 이상 자동차를 만들어온 전통 완성차(OEM) 생태계 전체의 표준이 되기는 어렵다.
자율주행 초기에는 보쉬나 콘티넨탈 같은 Tier 1도 테슬라처럼 두뇌 알고리즘부터 제어기, 주행 데이터 수집 및 학습 인프라까지 전 과정을 자체 해결하려 시도했다. 필자가 현역에 몸담고 있을 때도 분명 그렇게 접근했다. 하지만 Tier 1 입장에서 '두뇌-데이터-물리'라는 세 축 전체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쏟아붓고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 글로벌 자동차 생태계는 각자가 가장 잘하는 영역을 나누어 맡는 합리적인 3대 분업 체제로 재편되었다.
두뇌 (Compute & Edge AI): 엔비디아, 퀄컴, 모빌아이, 호라이즌 로보틱스
데이터 & 연결 (Cloud & Infrastructure):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AWS), 구글
물리 제어 & 안전 통합 (Physical & Safety Integration): 보쉬, 콘티넨탈, 현대모비스 등 전통 Tier 1
이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귀결이다. 지난 전자제어 시대를 거치며 시스템 오류와 오작동에 대한 법적·물리적 책임을 짊어져 온 주체는 바로 전통 Tier 1들이었다. 상위 AI 두뇌가 아무리 현란한 연산을 수행하거나 간혹 치명적인 오류(환각)를 일으키더라도, 100km/h로 질주하는 2톤짜리 쇳덩어리가 전복되거나 폭주하지 않도록 최종 안전 가드레일(Fail-Safe)을 치고 명령을 걸러내는 책임은 물리 제어기를 쥔 Tier 1에게 있다.
아무리 번뜩이는 AI 알고리즘과 초고속 연산 칩셋이 등장해도, 자동차가 인간의 생명을 싣고 거친 도로 위를 달리는 한 '물리적 동작을 통제하고 책임지는 시스템'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래전 경영학(MBA)을 공부하던 시절, 갓 등장한 e-Book을 두고 교수님께서 “e-Book이 나오면 종이책은 어떻게 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대다수가 종이책의 몰락을 점쳤지만, 교수님의 대답은 “종이책의 가치는 오히려 더 확고해질 것”이었다. 실제로 e-Book은 편리한 '보완재'로 안착했을 뿐, 종이책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인간 대신 판단하고 명령을 내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지능이 기계화된 바로 이 시점에 '물리 세계의 안전을 담보하는 전통 제어기'의 역할은 사람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하늘의 지능이 아무리 높아져도, 인간은 결국 땅을 딛고 살아간다.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묵직한 물리 기술은 그 어떤 화려한 알고리즘으로도 결코 대체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