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탄생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SoC(System on Chip),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 SDF(Software Defined Factory)들도 사회에서 사람들과 수십 년을 함께 살아가는 부품이자 시스템이다. 이들이 잘못 만들어져 오작동을 하거나, 주어진 작동 환경을 이겨내지 못해 파괴되거나 멈춰 선다면, 그것과 어울려 살아가며 도움을 받던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고, 적어도 큰 불편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엔지니어들은 하나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작하고 시험하여, 마지막으로 사회로 내보낼 때까지 철저한 검증 작업을 거친다. 그 대표적인 절차 중 하나가 바로 **FMEA(Failure Mode and Effects Analysis, 고장 형태 및 영향 분석)**다.
하나의 부품이나 시스템을 만들 때, 이것이 설계된 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는 모든 결함 가능성을 짚어낸다. 그런 고장 형태가 발생했을 때 얼마나 치명적인지(심각도), 얼마나 자주 일어날 수 있는지(발생빈도), 그리고 사전에 얼마나 짚어낼 수 있는지(검출도)를 각각 점수로 매긴다. 이들을 곱해 산출한 위험 점수가 기준치를 넘거나 심각도가 치명적인 수준이라면, 그 시스템은 결코 사회로 나가지 못하고 설계 단계에서 멈춰 서게 된다. 물론 점수가 안전 수준으로 낮아질 때까지 설계를 변경하고 보완하여 개발을 이어가는 것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동차는 고속으로 달리는 기계이며 무수히 많은 부품이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기 때문에,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품과 제어 시스템에 대한 FMEA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개발 과정의 수많은 회의 중에서도 FMEA뿐만 아니라, 품질과 일정, 비용 등 사업성 전체를 다루는 프로젝트 리뷰(Project Review), 그리고 개발된 시스템이 최종적으로 차량에 장착되어 세상 밖으로 나가도 좋을지를 최종 판정하는 QG4(Quality Gate 4) 등은 가장 치열하고 혹독한 회의에 속한다.
이런 회의가 잡히는 날이면 가장 큰 회의실을 잡고 테이블 위에 커피와 쿠키, 간식용 빵을 가득 쌓아둔다. 설계 사양, 재료, 가혹한 고객 요구사항, 법규 등 복합적인 난제들이 테이블 위에 오르면 마라톤 토론이 이어지기에, 모두가 단단히 결기를 품고 들어가는 것이다. 회의를 마치고 최종 프로토콜(의사록)을 정리할 때쯤이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그 누구도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을 정도의 탈진 상태가 되곤 한다.
이처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하나의 기계를 만들어 사회로 내보내는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자식을 낳고 길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내보내는 숭고한 과정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자동차라는 기계, 그리고 그 속을 채우는 부품 하나하나를 세상에 내놓는 일 역시 수많은 사람의 안전을 짊어지는 막중한 책임의 연속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사회 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찌 기계뿐이겠는가? 사람이 거주하는 집, 차가 달리는 도로 등 수많은 사회적 인프라와 제도가 우리 삶을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환경을 통제하고 작동 방식을 규정하는 수많은 법과 규칙들이 입법부인 국회와 정부 부처, 그리고 지방의회와 자치단체를 통해 쉼 없이 만들어지고 발효된다.
여기서 깊은 의문이 남는다. 우리 삶의 향방을 결정짓는 이 수많은 법과 규정들은, 과연 엔지니어들이 기계 부품 하나를 검증할 때처럼 엄밀하고 냉정한 사전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치고 있는가?
몇 해 전 온 나라를 뒤흔든 전세사기 사태를 보며 형언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서민을 돕겠다는 선한 명분으로 포장된 법과 금융 규정이 어떤 부작용과 결함을 낳을 수 있는지 정량적으로 시뮬레이션되지 않은 채 발효되었고, 심지어 작동 과정에서조차 모니터링되지 않아 수많은 청년과 서민들이 전 재산을 빼앗기고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그것이 기계든, 건축물이든, 법률이든, 사람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함께 공존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면 예외 없이 가혹한 검증을 통과해야 마땅하다. 그 어떤 명분보다 사람의 생명과 삶의 터전이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과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입법과 정책 결정의 회의실에서는,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Law-FMEA'**가 진지하게 작동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