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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없는 45도 데스밸리부터 스페인 파에야까지: 엔지니어들의 익스트림 생존기 (Hot & Cold Test)

 

남들이 휴가를 떠날 때, 우리는 극한의 오지로 떠난다

자동차를 개발하는 과정에는 완성된 차량을 가지고 설계대로 성능이 나오는지, 그리고 미처 생각지 못한 설계상의 오류는 없는지 최종 검증하는 혹독한 과정이 있습니다. 엔진과 변속기를 포함하는 파워트레인(Powertrain) 부문, 그리고 ABS나 ESP 등이 속한 제동장치 개발 팀들이 이 악명 높은 '극한 환경 시험'을 가장 많이 떠나곤 합니다.

이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기후와 환경'입니다. 그래서 이 팀들은 남들이 한창 휴가를 즐기는 시즌인 한여름과 한겨울에 주로 짐을 쌉니다. 여름 시험을 '핫테스트(Hot Test)', 겨울 시험을 '콜드테스트(Cold Test)'라고 부르며 지구상에서 가장 척박한 곳들을 찾아다니지요.

제가 담당했던 파워트레인 시험 장소로 유명한 곳은 미국 라스베가스 부근의 데스밸리(Death Valley), 스페인의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산이 대표적이며, 국내에서는 대구 팔공산이나 남원 지리산이 여름 시험 장소로 인기가 높습니다. 반대로 겨울에는 미국의 인터내셔널 폴스(International Falls)나 스웨덴의 설원으로 향합니다.

가끔 호주로 여름 시험을 가기도 하는데, 여기는 일종의 대타(Pinch Hitter) 성격이 강합니다. 정규 여름 시즌에 시험용 자동차가 제때 준비되지 못해 타이밍을 놓치면, 북반구의 여름이 다 가버리기 때문에 6개월 늦게 여름이 찾아오는 남반구 호주로 급하게 날아가는 것이죠.

섭씨 45도 뙤약볕, 얼룩말 자동차를 타고 해발 3,000m를 오르다

여름 테스트와 겨울 테스트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여름에는 기온이 극도로 높거나 고도가 높은 지역을 무대로 삼습니다. 해발 3,000m까지 올라가다 보면 동료들 중에는 머리가 어질어질하다고 호소하는 이들도 나옵니다. 이 고지대에서 엔진 연료공급시스템 내에 기포가 생기거나 증발가스가 새지 않는지, 그리고 대기압이 낮아져 엔진으로 빨려 들어오는 공기 분자량이 급감하는 상황을 ECU(Engine Control Unit)가 영리하게 보상 제어하는지를 집중적으로 쳐다봅니다.

그래서 여름 시험은 데스밸리나 시에라네바다에 가더라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매일 이리저리 수백 킬로미터를 헤매고 다닙니다. 가끔 도로 상에서 자동차를 얼룩말처럼 현란하게 칠하거나 위장막 포장을 씌운 채 떼 지어 다니는 시험팀들을 보실 수 있을 텐데, 그 시절 그 무리 중 한 대를 운전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여름 시험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정오가 되면 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치솟는데, 이 뙤약볕 아래에서 온몸으로 버텨야 합니다. 게다가 테스트용으로 급하게 개조된 차량들이라 대부분 에어컨이 장착되어 있지 않거나, 있어도 냉매가 없어 작동하지 않는 '찜통' 상태입니다.

에어컨도 안 나오는 차 안에서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산꼭대기 3,000m 고지를 몇 번 왕복하고 나면, 정말이지 더 이상 할 맛이 나지 않습니다. 목은 타들어 가고 피부는 땀으로 끈적거리는데, 혹여 직사광선을 정면으로 받은 노트북마저 열을 받아 '맛이 가버리면'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진 채 숙소로 퇴근하곤 했습니다.

겨울 테스트의 묘미와 한국 OEM들의 '시동성 집착'

반면 겨울 시험은 '냉간 시동성'이 메인 테마입니다. 영하 25°C의 극저온 환경에서도 단 한 번에 시동이 걸리는 '일발시동'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죠.

이를 검증하려면 밤새 최소 8시간 동안 자동차가 차가운 외기온에 완벽하게 식어야 하므로, 낮 동안 멀리 돌아다니지 못합니다. 저녁이 되면 얼른 일과를 마치고 내일 아침 시험할 장소에 차들을 나란히 주차해 둔 뒤, 숙소로 들어와 따뜻한 방에서 시험 결과를 정리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 자동차 메이커들이 유독 이 일발시동과 시동 직후 엔진이 자로 잰 듯 정숙하게 작동하는 '아이들(Idle) 정숙성'에 엄청나게 집착한다는 사실입니다. 유럽에서 명차라고 불리는 브랜드들을 경험해 봐도, 시동성이나 초기 정숙성에 있어서 우리나라 메이커만큼 무섭게 집착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는 결국 소음에 민감한 최종 고객의 성향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보입니다. (물론 요즘은 전기차가 나와도 너무 정숙해진 세상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극한지 자동차시험을 수행중인 엔지니어


미국 데스밸리의 5달러 카지노 뷔페, 스페인의 샌드위치 잔혹사

미국 데스밸리나 폭스바겐(VW)의 주행시험장(Proving Ground)이 있는 피닉스로 시험을 가면 딱 하나 좋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변에 카지노가 많다는 점이었죠.

독일 VW 루포(Lupo) 차량을 가지고 시험을 나갔을 때로 기억합니다. 폭스바겐 본사에서 나온 차량 시험팀, 변속기 시험팀, 그리고 우리 엔진 시험팀이 한 조가 되어 움직였습니다. 아침밥은 늘 숙소 근처 카지노 부속 식당에서 해결했는데, 가격이 상상 외로 저렴했습니다. 단돈 5달러 정도였던가요?

이유를 물어보니, 밤새 도박을 하느라 돈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으로 아침 식사를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라 하더군요. 야채를 골라 건네면 셰프가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오믈렛 코너도 있었고, 아이스크림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상당히 우아한 분위기의 식당이었습니다. 덕분에 매일 아침을 단돈 5달러로 풍성하게 해결하곤 했습니다.

반면 유럽으로 핫테스트를 나가면 미국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생존기가 펼쳐집니다. 스페인 그라나다 근처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으로 고지 시험을 갈 때는 시험차들을 비행기로 공수하고 팀원들이 이동하는 것부터가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보통 독일 프랑크푸르트 같은 교통 요충지를 집결지로 선정해 시험차와 참고차를 포함한 10여 대의 차량과 인원을 모읍니다. 전열을 정비하고 대장정을 떠날 수 있는 몸 상태인지, 현지 숙소와 도로 상황은 괜찮은지 체크한 뒤 목적지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직접 운전해 이동합니다.

이 거대한 팀이 움직이다 보면 항상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습니다. 현지인 차량과 사고가 나거나, 신호위반으로 현지 경찰에게 단속당하고, 짐을 분실하거나, 누군가 물이 바뀌어 배탈이 나는 등 베테랑 엔지니어들에게도 이동 자체가 거대한 전쟁이었습니다.

"성한 이빨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바게트가 남긴 서바이블 스페인어

언젠가 독일에서 스페인으로 이동하던 중, 프랑스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저녁을 먹으러 로컬 식당에 들어갔는데, 식당 주인은 당연히 영어가 안 되었고 우리 팀 중에서도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메뉴판을 뚫어지게 정독해도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Sandwich' 뿐이었습니다. 결국 전 팀원이 샌드위치를 주문했지요. 그런데 잠시 후 나온 음식은 우리가 생각한 부드러운 식빵이 아니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단단한 바게트 빵을 세로로 쪼개고 그 사이에 긴 소시지 딱 하나를 덜렁 끼워 넣은 투박한 음식이었습니다.

그 질긴 빵을 턱이 아프도록 뜯어 먹는 내내 머릿속에는 딱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내가 과연 성한 이빨을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아픈 기억을 안고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출발한 지 1박 2일 만에 마침내 스페인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역시 영어 통용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고, 우리 팀은 스페인어를 몰랐습니다. '이번엔 또 무엇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나' 덜컥 겁이 나더군요.

저는 도착하자마자 호텔 리셉션 데스크로 달려가 직원을 붙잡고 1시간 동안 눈을 반짝이며 '서바이블 스페인어'를 속성으로 배웠습니다. "맥주 주세요(Una cerveza, por favor)", "감사합니다(Gracias)" 같은 생존 구절부터 숫자 세는 법, 그리고 현지에서 먹을 만한 음식을 필사적으로 받아 적었습니다. (스페인의 대표 해산물 볶음밥인 '파에야'를 처음 알게 된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그렇게 생존 키트를 마련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본업인 차량 시험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시험 일정을 혹독하게 마치고 나면, 스페인은 엔지니어들에게 멋진 보상을 건네주곤 했습니다. 그라나다의 붉은 알함브라 궁전, 활기 넘치는 일반 시장,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바르셀로나의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제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것은 정열적인 플라멩코(Flamenco) 춤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식당에서 플라맹고를 감상중인 엔지니어


일정을 마치고 간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으면, 무희들이 제 코앞에서 발을 구르며 플라멩코를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동적인 몸짓과 에너지는 한낮의 뙤약볕 아래에서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피로를 한순간에 날려버릴 만큼 강렬한 정열, 그 자체였습니다.

지구의 양 끝을 오가며 자동차의 한계를 시험했던 그 치열했던 시절, 엔지니어들의 땀방울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아우토반과 데스밸리의 추억은 여전히 제 가슴 한편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칼럼] DCAS의 출현으로 본 자동차 잔혹사와 기술 통합의 방향: SDV 시대,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이 던지는 메시지

38년간 자동차 제어 시스템의 진화를 현장에서 지켜본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지금의 자동차 제어기술의 발전과 법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적어본 칼럼입니다. 1.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의 재현, SDV가 맞닥뜨린 진통 SDV(Software Defined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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