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달린 스마트폰의 시대: 기계가 소프트웨어에 항복하다 (The Shift to SDV)
자율주행과 전기차의 숨고르기, 그리고 '캐즘'의 본질
10여 년 전부터 전 세계적인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자율주행차와 전기자동차의 기세가 요즘 들어 눈에 띄게 쑥지막해졌습니다. 시장과 정부가 기대했던 만큼의 폭발적인 성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일종의 정체기에 접어든 모습입니다.
자율주행은 단일 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천문학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이리저리 콘소시엄(Consortium) 형태로 뭉치며 발전해 가는가 싶더니, 파트너사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시장의 반응마저 미지근해지면서 최근에는 흐름이 다소 주춤한 상태입니다.
전기자동차 역시 환경단체들과 이를 지원하는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드라이브 아래 확산 속도가 엄청나게 빠를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제조사의 바람과는 다르게 시장의 반응은 다소 시큰둥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고층 아파트 위주의 주거 형태를 가진 구조에서는 '지하주차장'과 '전기차 화재'라는 치명적인 상극 관계가 해결되지 않는 한,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란 당분간 어려워 보입니다.
폭풍전야의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 SDV
하지만 지금의 주춤함은 퇴보가 아니라, 다음 도약을 위한 무서운 '예열 기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들은 지금 전기차나 자율주행의 하드웨어 자체보다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역량을 강화하는 데 모든 화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미래의 자동차 형태가 전기차와 자율주행으로 귀결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 하드웨어 확산 속도가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이 틈을 타서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이제 요즘의 자동차는 우리가 알던 과거의 '기계장치'가 아닙니다. 냉정하게 말해 "모바일폰에 바퀴를 달아놓은 전자제품"으로 보는 것이 훨씬 정확합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해 앱을 업데이트하듯, 자동차 역시 주행 중에 SOTA(Software Over-The-Air·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나 FOTA(Firmware Over-The-Air·펌웨어 무선 업데이트) 기능으로 차량의 성능과 기능을 통째로 업그레이드합니다. 운전석의 콕핏(Cockpit·계기판 및 디스플레이 영역) 또한 점점 대형 스마트폰 화면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마력과 제로백의 시대에서 '연결성'의 시대로
세상이 바뀌니 자동차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각, 특히 젊은 세대의 기준도 옛날과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과거 우리 세대 엔지니어들과 마니아들은 철저히 '성능' 위주로 자동차를 평가했습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제로백)이 몇 초인지, 엔진의 마력과 토크가 얼마나 높은지, 변속기는 몇 단인지가 최고 관심사였죠.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기계적 수치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대신 차 안에서 인터넷이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연결되는지, 이동 중에 스트리밍 영상을 보거나 화상 회의 같은 업무를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는지, 내가 이동하는 목적지의 현지 정보를 얼마나 스마트하게 제공하는지 같은 '모빌리티와 엔터테인먼트(Mobility & Entertainment)' 요소에 훨씬 더 열광합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파워'와 '다이내믹'이라는 거친 기계식 개념이 저물고, 자동차가 결국 소프트웨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 항복 선언을 한 셈입니다. 38년간 거친 엔진 소리와 변속기 기름내 속에서 청춘을 보낸 올드 엔지니어의 눈에 비친 이 조용한 혁명은, 낯설면서도 참으로 경이롭기 그지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