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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의 미국 vs 성능의 유럽: 38년 차 엔지니어가 말하는 자동차 경주의 세계

 

미국형 레이스 '흥미'와 유럽형 레이스 '성능'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모터스포츠가 열리면서, 자동차 경기가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본격적으로 자리 잡을 날이 곧 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자동차 경주(모터스포츠)의 세계를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지구상의 자동차 경주는 지역적으로 대별하여 크게 '미국형 경기'와 '유럽형 경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그 성격을 함축하자면 미국형은 '흥미', 유럽형은 '성능'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미국형 경주로는 나스카(NASCAR)와 인디카(IndyCar)라는 두 개의 큰 흐름이 존재합니다. 둘 다 원형 트랙을 도는 경주이며, 자동차 고유의 순수한 성능보다는 관중의 흥미를 유발하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가득합니다. 트랙을 한 바퀴 돌 때마다 선두를 확보한 운전자에게 보너스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이나, 팀을 구성하여 미국 전역을 돌며 투어 경기를 치르는 방식 등이 대표적입니다.

반면 유럽에는 포뮬러(Formula), 르망24(Le Mans 24), 투어링카 레이스, 월드랠리챔피언십(WRC)과 같이 다양하고 정교한 경기들이 발전해 왔습니다. 이 경기들은 미국의 단순한 타원형 트랙과 달리, 트랙의 모양이 아주 복잡하고 경기장마다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집니다.

특히 모나코 몬테카를로(Monte Carlo) 트랙은 평소에는 일반 도로로 사용되다가 F1 시즌이 되면 경주용 트랙으로 전용됩니다. 그 옆 해안가에 정박한 호화 요트 위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F1을 감상하는 부호들의 풍경은 유럽 모터스포츠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각국의 서로다른 자동차 경주를 보여주는 이미지

전 세계 자동차 경주의 정점, F1 (Formula 1)


그중에서도 F1(포뮬러 원)은 전 세계 자동차 경주의 'Best of the Best'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경기에 사용되는 자동차는 흔히 '차'라고 부르지 않고 '머신(Machine)'이라 칭합니다. 스포츠와 첨단 과학이 결합한 최고 수준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F1 머신의 스펙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배기량 자체는 우리가 흔히 타는 쏘나타 수준인 2,400cc(과거 엔진 기준) 정도에 불과하지만, 성능의 궤가 다릅니다.

항목                 F1 머신 주요 스펙 및 성능
엔진 최고 회전수최고 18,000 rpm 육박
최고 출력일반 자동차의 3배 이상인 750 마력 수준
머신 무게640 kg 내외 (60년 역사 동안 알루미늄 $\rightarrow$ 티타늄 $\rightarrow$ 탄소섬유로 진화, 규정상 드라이버 몸무게 포함 최저 기준)
제로백
(0 --> 100km/h)
2.4초
제동 성능
(200 --> 0km/h)
1.9초 만에 완전 정지
머신의 가속력보다 더 경이로운 것은 바로 '제동 성능'과 '피트 타임(Pit Time)'입니다. 트랙을 수십 바퀴 돌며 마모된 타이어를 교체하고 연료를 보충하기 위해 피트(Pit)로 들어오는데, 타이어 4개를 완전히 교체하고 연료를 채워 다시 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3초대에 불과합니다. 수십 명의 전담 엔지니어와 크루가 하나의 정밀한 기계처럼 움직이는 예술입니다.

이 복잡한 트랙에서 머신과 호흡을 맞추는 드라이버들의 기량 또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카트(Kart)를 타며 경기 감각을 익히고, 하위 리그를 거치며 철저하게 걸러진 천재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독일 출신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 같은 스타 선수는 전성기 시절 1년 연봉이 수천억 원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미래의 기술을 미리 보는 시험대, 르망 24 (Le Mans 24)


프랑스 남부 도시 르망에서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르망 24'는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경기이기도 합니다. 이 경기는 속도보다 '내구성'을 겨루는 시험대입니다. 한 대의 자동차로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트랙을 돌며(운전자는 교대 가능) 어느 머신이 고장 없이 가장 많은 바퀴를 돌았는가로 등수를 가립니다.

이 시합이 위대한 이유는 '몇 년 후에 시중 자동차에 적용될 첨단 기술'을 가장 먼저 목격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이 대회를 독식했던 아우디(Audi) 팀이 대표적입니다. 그들은 어느 해에 가솔린 GDI(직분사) 엔진을 들고나와 상위권을 휩쓸더니, 그다음 해에는 파격적으로 디젤 엔진을 장착하고 나와 다시 한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르망 24에서 내구성이 검증된 이 엔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우디의 하이엔드 슈퍼카인 R8 등의 심장으로 고스란히 이식되어 시장에 등장했습니다. 독일 넥카줄름(Neckarsulm)에 있는 전용 공장에서 이 장인들의 차가 만들어지곤 했지요.

엔지니어의 야성이 폭발하는 무대, 월드 랠리 챔피언십 (WRC)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바로 랠리(Rally) 경주입니다. 사실 랠리야말로 자동차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기량과 야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입니다. 앞서 말한 F1은 차의 무게, 배기량 등 규제가 너무 깐깐해서 엔지니어의 창의성이 제한받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랠리는 상대적으로 기술적 시도가 훨씬 자유롭습니다. 그래서 유럽 근무 시절 모터스포츠 부서(MSD)에 있던 동료들은 늘 "F1보다 랠리 엔지니어로 일하는 게 훨씬 짜릿하고 재미있다"고 입을 모으곤 했습니다.

랠리는 매끈한 트랙이 아닌, 산악 지형의 거친 비포장도로나 일반 도로를 무대로 삼기 때문에 박진감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여기서는 핸들을 잡는 '파일럿' 못지않게, 옆자리에서 주행을 가이드하는 '코-파일럿(Co-Pilot 또는 네비게이터)'의 역할이 생명줄과 같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도로를 그냥 보고 반응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속도이기 때문에, 네비게이터가 미리 지형을 읽고 파일럿이 해야 할 조작을 무전기로 쉴 새 없이 불러줍니다. 그러면 파일럿은 양손과 양발을 기계처럼 움직이며 마치 춤을 추듯 차를 미끄러뜨립니다. 파일럿의 발밑을 촬영한 카메라 영상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경탄이 절로 나옵니다.

🏁 이웃집 아저씨 '볼프강'이 남긴 교훈

제가 다니던 독일 회사에는 과거 랠리 파일럿 출신의 어플리케이션 엔지니어 동료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볼프강(Wolfgang)**이라는 친구였죠. 지금은 은퇴할 나이가 되어 인자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유럽 무대를 주름잡던 꽤 잘 나가는 현역 선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거대 스폰서를 잡지 못해 은퇴 후 평범한 회사원이 된 케이스였지요. 하루는 출장길에 그 친구가 모는 차를 같이 타게 되었습니다. 명색이 랠리 선수 출신인데 운전을 너무 얌전하고 신사적으로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조수석에서 슬쩍 장난기가 발동해 한마디 던졌습니다.

"이봐 볼프강, 왕년 실력 살려서 랠리 하듯이 한번 밟아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용하던 아저씨의 눈빛이 돌변했습니다. 이어진 몇 분간의 질주는 그야말로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경험이었습니다. 차가 도로 위를 날아다니는데, 정말이지 시트에 실례를 할 뻔할 정도로 혼비백산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결코 랠리 드라이버 출신들에게 운전 조롱을 하지 않는다는 묵직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젊은 시절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모터스포츠. 그것은 단순한 속도 경쟁을 넘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드라이버들의 집념과, 만 분의 일 초를 쪼개어 기계를 완성해 낸 엔지니어들의 집요한 과학이 결합한 인류 최고의 기술 축제입니다.

[칼럼] DCAS의 출현으로 본 자동차 잔혹사와 기술 통합의 방향: SDV 시대,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이 던지는 메시지

38년간 자동차 제어 시스템의 진화를 현장에서 지켜본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지금의 자동차 제어기술의 발전과 법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적어본 칼럼입니다. 1. 150년 전 붉은 깃발법의 재현, SDV가 맞닥뜨린 진통 SDV(Software Defined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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